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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리에가 들려주는)삼각함수 이야기
    저자
    송륜진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행연도
    2012
    작성자
    김**
    작성일
    2026.09.03
    평가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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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공감수

    <<삼각함수 이야기>> 송륜진 지음. 자음과모음.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써 놓은 문자가 삭제되었다. 무척 화가 난다. 삭제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실수나 어리석음은 더 선명해진다. 분명 한 두 가지라도 잘 한 일이 있을텐데 그것들은 모두 삭제 되었다.

    오늘의 삼각함수 이야기는 푸리에가 들려준다. 총 8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은 일반각의 정의, 2장 삼각함수의 정의, 3장 삼각함수의 성질, 4장 sin함수의 그래프, 5장 cos함수의 그래프 6장 tan함수의 그래프, 7장 삼각방정식과 삼각부등식, 8장 삼각함수의 응용. 3장까지 겨우 읽고 남겨진 장은 숙제로 남겨둔다. 아직까지 내 힘과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오를 수 있을 곳까지 갔다나, 힘이 부치면 다시 내려온다. 저 앞에 정상이 보일지언정 안 되는 것은 안된다. 매번 그렇지만 내가 수학을 공부하는 방식은 외우고 반복하고 문제를 푼다. 무슨 감상이나 느낌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외우고 반복하고 푸는 것이 딱딱해 보이지만, 거기에 수학의 매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매 번 이 글은 책의 내용을 다시 써보며 내 방식대로 이해해 보는 식이다. 외우고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베끼고 베껴야 한다. 지루한 반복만이 살길이다. 살아가는 일도 또한 무한 반복이다. 그 지겨운 반복 속에 기쁨도 슬픔도 삶도 있다. 다른 도리가 없다.

    푸리에는 “자연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 수학적 발견의 가장 풍요로운 원천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에서 자연이란, 나무와 강물이 있는 자연이 아니라, 세계 혹은 객관적 질서를 의미하리라. 수학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호기심이 그 동력인 듯 하다. 저자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경제, 과학, 현상 등 많은 부분에서 삼각함수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삼각함수란, 삼각과 함수의 합성어이다. 삼각이란, 각이 세 개 모여있는 삼각형의 각이다. 우선 각이란 평면상의 한 점 O에서 출발한 2개의 반직선을 선OA, 선OB라 할 때, 이들 반직선이 만드는 도형 AOB를 말한다. 각은 기호로 ∠AOB라 한다. 간단히 ∠O라고도 한다. 평면도형에서는 0도에서 360도까지의 각만으로 충분하다. 평면도형이란, 바닥에 놓인 종이 한 장이나,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할 때의 도형이다. 지구가 평면도형일 때는 360도면 모든 방향이나 각도를 잴 수 있었다는 의미 같다. 그러나 각을 이루는 회전 방향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한다. 회전을 하면 회전량이 따져야 한다. 한 바퀴가 360도 인데, 두 바퀴도 똑 같이 360도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개념이 필요로 한다. 일반각이란, 각에 대한 개념을 확장하여 회전량으로 생각한 개념이다. 반직선OX와 꼭짓점 O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반직선 OP가 있을 때, OX를 시초선, OP를 동경이라 한다. 동경(움직이는 반직선)이 회전하는 방향이 시계 방향과 반대 방향 두 가지다. 동경은 회전하고 방향도 두 가지다. 해서 동경 OP의 위치가 정해져도 몇 번 회전 했는지, 어느 방향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30도, 390도, 750도는 같은 위치지만 회전량은 다르다. 해서 30도는 360*0+30, 390도는 360*1+30, 750도는 360*2+30로 표기한다. 0,1,2는 회전 수, 30도는 위치를 나타낸다. 그럼 음의 방향은 360*(-1)+30으로 표기한다. 이것을 일반화 하면 일반각의 표기는 360*n+aₒ(n=0, n=±1, n=±2 ----)다. 그리고 일반각의 개념을 좌표평면 위에 놓으면 제1사분면 각, 제2사분면의 각, 제3사분면의 각, 제4분면의 각이라 위치 할 수도 있게 된다. 일반각과 좌표평면의 만남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각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응 ‘도’이다. 이는 육십분법이라 한다. 육십분법 말고 새로 사용할 수 있는 단위에 ‘라디안’이 있다. 각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라디안을 사용하는 방법을 호도법이라 한다. 호도법이란, 반지름이 r인 원에서 반지름의 길이 r에 대한 호의 길이 s의 비로 나타낸다. 식으로 하면 s/r 즉 s;r 이다. r이 2, s가 2면 1라디안이다. r이 2,s가 1면 1/2라이안이다. 그럼 호의 길이가 반원의 둘레와 같다면, 중심각은 180도이다. 호의 길이는 s=1/2*2πr이다. 원둘레가 2πr이니 반원은 1/2를 곱한다. s=1/2*2πr=πr이다. s/r =πr/r=π라디안. 180도는 π라디안이다. 360도 이면 2π라디안. 호도법의 라디안과 육십분법의 도를 바꾸는 방법은 호도법으로는 π/180. 육십분법으로는 180/라 한다. 30도는 몇 라디안일까? 180;π라디안 =30;x라디안 180*x라디안=30*라디안. x=π/6라디안. 반대로 1라디안은 얼마? 180;π라디안=x;1라디안. x*π라디안=180*1. π가 3,14---이니 대입해 보면 x는 57.30이다. 약간 아리송하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멀쩡한 육십분법을 놔두고 호도법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이유가 뭘까. 호도법으로 만들기 위해 시초선, 동경, 사분위 각, 라디안 같은 개념들을 만들고 기존의 방식을 확장하거나 상상하고 새로 조합할까?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지금 각광받고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하고 패턴을 찾아내어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적 논리이자 절차’ 이후 호도법은 엄청난 일을 해낸다고 한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에서 보듯이 현대 사회의 많은 것들은 사실 수학적 기반 위에 건축되었을지 모른다. 우리의 사고 기능까지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은 여기까지만.

  • 자연의 예술적 형상
    저자
    에른스트 헤켈 지음 ; 엄양선 옮김 ; 이정모 해설
    출판사
    그림씨
    발행연도
    2018
    작성자
    김**
    작성일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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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공감수

    <<자연의 예술적 형상>> 에른스트 헤켈. 엄양선 옮김. 이정모 해설. 그림씨

    무엇이든 써야 한다. 농부가 밭에 가듯, 어부가 그물을 짊어지고 바다로 가듯, 목수가 대패질을 하듯, 써야 한다. 하지만 매번 써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터로 가고, 어머니는 더 일찍 밥을 차려낸다. 봄에는 새싹이 움트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고, 가을엔 스스로 떨구고, 겨울에는 헐벗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또 그렇게 살아가리라.

    이 책은 대부분이 그림으로 채워졌다. 이정모의 해설이 몇 쪽 있고, 에른스트 헤켈의 서문이 두 장이고, 나머지는 모두 도판이다.유공충류, 섬모충류, 방사극충류, 불가사리류, 요각류 등 백 가지는 넘는다. 대부분 해양 식물이나, 충류들이다.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현미경이나 고효율 돋보기로나 볼 수 있는 생물들이다. 사진기가 없는 시절이었으니, 헤켈이 손으로 그린 도판이다. 헤켈의 미생물 그림은 아돌프 길치가 석판화로 제작하여 출판되었다. 일일이 관찰하고 그림을 그린 헤켈도 대단하고, 그것을 석판화로 제작한 길치에 대해 갈채를 보내고 싶다. 헤켈은 그림 솜씨가 매우 훌륭했고, 길치의 석판화도 아주 아름답고 정교하다.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벌써 퇴출되어 도서관 지하창고에 보관 중인 책을 끄집어 냈다. 생물학이나 해양 생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이정모의 해설을 인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정모는 헤켈,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다. 라고 썼다. 헤켈은 1834년 태어나서 1919년 사망했다. 1705년 증기기관, 1752년 피뢰침, 1774년 산소 발견, 1789년 프랑스 혁명, 1796년 천연두 백신 실용화, 1799년부터 1804년에 걸친 홈볼트의 아메리카 탐험, 1859년 다윈 <종의 기원> 출간. 등등. 18, 19세기에는 근대, 과학, 새로운 사회와 정치가 봇물처럼 터진 시기였다. 헤켈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생태학’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 ‘생태학이란 자연의 경제에 관한 지식체계다’ 현대 물리학의 태동 시기는 1890-1905년 사이라고 한다. 그 전에 생물학도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인간과 세계가 확장되고, 그만큼 그것들에 많은 관심이 쏠렸음을 직작할 수 잇다. 요즘은 AI, 로봇공학이나 하는 과학이 각광받는데, 당시에는 생명에 대한 연구가 중요했던 모양이다. 이정모는 해설을 하고나서 몇 번 이런 말을 덧붙인다.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홈볼트와 마찬가지로 헤켈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실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나 당연한 사실이 되기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과학사는 혹은 사회는 그런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회의 하면서 제 길을 간다. 헤켈은 서문에서 쓰고 있다. “자연은 자신의 품 안에서 놀랄 만큼 멋진 형상들을 지칠 줄 모르고 만들어 낸다. 그 아름다움과 다양성은 인간이 만든 모든 예술 형태를 뛰어 넘는다”

    헤켈의 책 제목은 <자연의 예술적 형상>이다. 자연, 예술, 형상이 담겨있다. 그는 “근대 조형 예술과 대단히 융성한 예술산업은 이 진정한 <자연의 예술적 형상>에서 더욱 새롭고 더욱 아름다운 모티브를 풍부하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추상미술, 행위 예술이니 하는 예술 사조가 많아 형상화를 하는 조형 예술이 시들었지만, 당시에는 조형예술이 우위를 차지한 모양이다. 그림을 보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자세히는 볼 능력이 못 되고, 몇 번 훑어 보았다. 잘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데 내게는 그런 자질도 없고 노력도 없다. 그림 모두는 일종의 바다 미생물이다. 단세포 생물이고 가장 작고 단순한 생물들이다. 이들은 단지 생존만 하면 되지, 이렇게 아름답고 복잡한 문양과 형상을 가질 이유가 있을까. 진화의 기적이라고 게으르고 성급한 판단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렇게 추론해 본다. 가장 단순한 생물부터 가장 복잡하고 큰 생물까지 모든 생물은 단지 생존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다운 생존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생명이란 가장 아름다운 무엇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그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생명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고, 살아가는 것은 예술 활동 일 수 있겠다 싶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저렇게 아름다움을 위해 노력을 하는구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존재한 모든 문양, 디자인, 장식, 예술적 형상이 여기에 다 있을 수가 있겠구나 싶다. 인간은 그 형상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취하여 예술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연에 모든 것이 있구나 싶다. 헤켈은 예술에 영감을 주고 싶었고,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대는 인간이 주인이고 생물계통계의 최고봉이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자연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고, 인간 생명의 토대가 자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생활이 인공적인 현대에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훈련된 안목과 오랫동안의 보는 능력에 대한 노력과 천재적인 자질이 없는 내가 이 책을 보고 가질 수 있는 관점이나 느낌은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정도다. 언제쯤 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가. 아름다운 생물이 될 수 있을까?

  • (해리엇이 들려주는) 일차부등식 이야기
    저자
    나소연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발행연도
    2008
    작성자
    김**
    작성일
    2026.08.22
    평가점수
    평가점수

    3

    공감수

    <<해리엇이 들려주는 일차부등식 이야기>> 나소연 지음. 자음과모음.

    내가 수학책을 읽는 이유는 남는 시간이 많아서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고, 친구도 모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시간만큼은 가을 들판의 낙엽처럼 넘쳐난다. 시간이 남는지, 아니면 시간을 남기는지는 모르지만, 이 시간을 메워야 한다. 한가함을 달래 줄 오락거리를 찾다가 수학책을 읽기로 하였다. 수학책 일기는 무엇보다 놀이다. 다른 사소한 이유가 있다면, 감정의 무질서에 대한 반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어”가 아니라, “너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든 실상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주관적 감정의 무질서가 아니라, 객관적 실재의 질서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 요즘에는 조금 방향이 달라졌다. 수학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음악이나 그림에서 예술적 감동을 받듯이, 수학에서도 그런 감동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수학책을 읽으면서 매번 이렇게 메모를 하는 이유는 복습이자 반복을 위해서다. 출장보고서인 양 쓰는 이유는, 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생각이란 것을 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매일 일기를 쓰듯이 정리를 할 이유가 있다. 매일은 무심코 흘러가지만, 정리를 하면 비로소 지루하고 하찮은 매일도 특별한 위상를 갖게 된다. 나는 왕처럼 나의 영토를 갖게 된다.

    기초에 충실해야 한다. 부등호는 등호와 부등호의 합성어이다. 등호는 ‘같음을 나타내는 기호’, 부등호는 등호가 아닌 것을 말한다. 즉 부등호는 ‘같지 않음을 나타내는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대긍정의 시대에 ‘부’ 자만 나오면 경기를 하는 자들이 많지만, 철학이나 인문학이나 수학 등에서 ‘부’는 긍정의 반대말이 아니라, 기호이자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등호나 부등호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호를 나타낸다. 같음과 같지 않음은 관계를 나타내는 기호일 뿐이다. 등호의 표기는 = 이다. 부등호의 표기는 < 와 > 다. 부등호는 해리엇이 만들었다. 등호와 부등호을 동시에 표기는 ≤ 와 ≥ 이다. 부게라는 수학자가 만들었다. 이것들을 합쳐서 부등호라고 한다. 이런 표기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정말 아름다운 기호다. 부등호가 만들어지고, 부등호가 들어간 식을 부등식이라 한다. 부등식의 해를 구하는 것을 ‘부등식을 푼다’라고 한다. 바로 이 부등식을 통해 많은 난제들이 해결되었고 세계는 더 깊고 넓어졌다. . 2-1=1, = 이 없었다면 사칙연산을 어떻게, 3은 2보다 크다를 3>2, x-3≤5, 아름답지 않는가. 나란 누구인가? 미지의 나를 x. 생물학적 존재인 나를 y, 세계를 z.라 하면 나란 y≤x≤z다. 이렇게 기호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예는 수학이 될 수 없다. 대상이나 집합이 뚜렷한 기준을 가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이런 구도를 사유해 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수학은 혹은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감춰져 있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부등식에도 사칙연산이 있다. 수학책을 읽다 보면 사칙연산이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고, 사칙연산의 원리의 이해가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게 된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이것이 수학의 모든 것이 아닐까도 싶다. 여기가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2x-5<11에서 미지수 x는. 2x-5+5<11+5. 2x<16. x<8. x가 8보다 작아야 한다. 2x-5을 저울의 한쪽. 11를 다른 한쪽이라면 이 식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x를 구하시오. 부등식을 푼다는 것은 x가 될 수 있는 범위를 구하는 것이고 x가 8보다 작은 수 모두가 해이다. 부등식의 성질 1-부등식의 양변에 같은 수를 더해도 부등호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x+5≤10. x+5-5≤10-5. x≤5, x는 5 이하의 수이다. 부등식 성질 2- 양변에 같은 수를 빼도 부등호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곱셈과 나눗셈은 더 까다롭다. 우선 정수의 곱셈은 –양수*양수=양수. 음수*음수=양수. 양수*음수=음수. 음수*양수=음수다. 정수의 음수에서 다루는데, 음수을 수로 사고하지 말고, 수직선 상의 양의 반대 방향의 형식으로 보았을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부등식의 해를 구하기 위해서는 곱셈이나 나눗셈도 이용해야 한다. 부등식의 성질3-양변에 같은 양수를 곱하거나 나누어도 부등호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다. a>b이고 c가 양수이면 ac>bc. 부등호의 성질4- 양 변에 음수를 곱하거나 나누면 부등호의 방향이 바뀐다. a>b이고 c가 음수이면 ac<bc. 수직선을 그려놓고 수를 양의 개념이 아니라, 방향의 개념(오른쪽 양의 방향, 왼쪽 음의 방향)으로 시도해 보면 알 수 있다.


    이항을 이용한 일차부등식의 풀이를 보자. 일차부등식이란 문자의 차수가 일차인 부등식이다. x+1<5 는 x의 차수가 1인 일차부등식, x²+1<5 는 차수가 2인 이차부등식이다. 반드시 문자와 수자의 조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항이란 x+3<5 → x<5-3. 풀어보면 x+3<5 →x+3-3<5-3→x<2. 좌변을 문자만 있는(미지수) 일차항, 우변을 숫자만 있는 상수항으로 모이도록 한다. 수학은 우선 이런 규칙들을 구구절절히 설명해야 하고 어떤 약속(법) 체계를 받아들여야 가능하다. 그런 후에 우리는 수학에서 자유를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자유란 방종이 아니라 규칙의 준수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란 천부인권이 아니라, 사실이 법이 보호하는 자유다. 5x-3<2x+6 →5x-2x<6-3→3x<9→x<3. 주의할 점은 음수를 곱하면 부등호의 방향이 바뀐다. -3x<-9 –3를 없애기 위해 양변을 –3으로 나누면 x>3이 된다. 분수 부등식은 분모의 최소공배수를 통분하여 일차부등식의 해를 구한다. 소수가 있는 부등식은 0.2(2x-3)<0.9 양변에 10를 곱한다. → 2(2x-3)<9 →4x-6<9 →4x<9+6 →x<15/4. 소수를 자연수로 만들어서 해를 구한다. 이런 식으로 연립일차부등식, 이차부등식, 3차부등식으로 차원을 높여 갈 수 있다고 한다.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수학 지식이 필요하고 더 많은 상상력과 자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수학은 이론적이지만 또한 실제적이다. 수학 뿐 아니라 모든 이론과 사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허황하게 보이는 형이상학도 사실은 실용적일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일지 모른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가장 간단한 실제적 문제를 들어보자.
    5명이 목적지까지 도착. 5명의 버스 요금 3,000원. 택시 기본요금 2,000원. 이후로 200m당 100원씩 할증. 택시요금<5명의 버스요금. 이 조건을 만족하는 거리는. 택시요금=(2km까지의 기본요금) + (더 움직인 거리의 요금 100x) =2000원+100x원. 2000+100x<3000. →100x<3000-2000 →100x<1000 →x<10. x가 9가 되면 버스요금보다 적게 나오며 최대한 탈 수 있는 거리가 나온다. 200m에 100원 할증이라 200*9=1800. 3,8km까지 가능.
    수학은 말이 많을 수 없는데, 아직은 수 보다는 말이 훨씬 익숙하니 별 수 없다. 언젠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수로만 이 지면을 채울 수 있기를 원해본다. 부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고 돌아 누워버렸을지도 모른다.

  • 삼국유사
    저자
    일연 지음 ; 김원중 옮김
    출판사
    민음사
    발행연도
    2008
    작성자
    김**
    작성일
    2026.08.19
    평가점수
    평가점수

    3

    공감수

    <<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리상호 옮김. 강운구 사진. 까치

    나의 집에 고양이는 거세 되었다. 애완묘로 살기 위한 고육책이다.
    ‘권태는 “우울한 무관심”에서 생겨난다’ 도시에 살기 위해 매일 권태와 고독과 우울을 싸워야 한다. 나는. 같은 저자는 덧붙인다. “오늘날의 삶에서 낙원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어디서나 한계는, 그것도 어림할 수 없이 중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과장없이 지각하는 것, 바로 여기에서 우울이 생겨난다. 우울은 인간의 한계조건을 직시하는 명민한 자의식이다.”
    의사나 심리학자는 다르게 진단하겠지만, 인문학자의 비평답다. 나는 우울하다. 그래서 무관심하다. 그래서 권태롭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 것들이 하찮고 가치가 없고 무의미하였다. 읽으면 뭐하고 쓰면 무엇할 것인가.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 “부패와 타락과 모순과 거짓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인문학자 문광훈의 ‘도시의 우울’ 에세이를 읽지 않았다면 여기 자판 앞에 앉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골목을 헤매거나, 술집에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살아야 한다.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하고, 물에 말아서라도 밥을 먹어야 하고, 산책을 해야 하고, 책을 읽고 뭐든 써야 한다.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고 부패해진다. 읽기 위해서는 계속 읽어야 하고, 쓰기 위해서는 계속 써야하고, 살기 위해서는 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절뚝이며’ 나가야 한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더럽고 추하며 비루한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 도시적 삶이란 인간 세상의 온갖 불순물을 안은 강물 같고, 그 속에 더럽고 추하며 비루한 것들이 가득하다. 불순물에 빠져 ‘우울한 무관심’에서 허우적거릴까. 아니면 ‘환상’을 스스로 만들어 낼까? 아나면 이것들을 감당하며 걸어가야 할까. 무슨 힘으로? 무엇으로? 문광훈은 예술과 나날의 마음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이라는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일까?

    /삼국유사/는 역사적 기록이지만, 매우 뛰어난 문학으로도 읽힌다. /삼국유사/는 13세기 고려의 고승 일연의 저작이고, /삼국사기/와 아울러 가장 오래되고 귀중한 역사 고전으로 평가 받는다고 한다. 삼국사기가 정사라면, 유사는 야사에 속한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해괴하고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되어 오랫동안 괄시를 받았다고 한다. 사기와 아울러 유사는 고대 삼국 시대에 대한 귀중한 문헌이라고 한다. 이 책은 리상호라는 북한 학자의 저서를 출판하였다. 한국에 학자들도 많은데 1950년 번역된 북한 학자의 번역을 엮은 것은 특이해 보인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강운구 선생의 사진이 많이 실린 점이다. 편집자에 의하면 강운구는 4년에 걸쳐 전국을 돌며 삼국유사의 자취를 찾아다녔고, 그 사진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저자 일연은 고려의 고승으로 노년기에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의 나이 76세 전후에 쓰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일연은 몇 년에 걸쳐 기록하고 엮고, 리상호는 매일 케케묵은 고서의 먼지를 뒤졌고, 강운구는 4년여의 발품을 들인 셈이다. 한 권의 책이 독자에게 오기까지도 감동이지만, /삼국유사/가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일연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쓴 서문이 없어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일연은 역사를 기록하였고, 문학 창작자이자, 고대 신화에 대한 충실한 전수자가 아닐까 싶다. 이 책 말미에는 발문이 첨가되어 있다. 1512년 경주진병마절도사 전평군 이계복이 쓰고, 참가했던 인물들이 소개되어서 공신력을 더하고 있다. 간행의 이유로 “이 나라에 살면서 이 나라의 사적을 모르는 것을 옳다고 하랴” 라는 대목이 있다. 그 사적이 부끄럽든, 아름답든, 정본이든 야사든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강운구는 자신의 사진 작업을 두고 천년 세월의 흔적을 더듬고 기웃거리고 서성인, 천년 시간이 쓰다듬고 지나간, 현시점의 현장을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삼국유사는 허구가 아니라 천년 세월 이 땅의 이야기이며 신화이고 지리서이고 역사였다. 우선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대출이 연체되어 다른 책을 빌릴 수 없어서다. 두 번재 이유는 마땅히 읽을 책도 없고 읽어야 할 이유도 없어서다. 세 번째 이유는 읽는 것에 대한 회의와 무용에 대한 의심이다. 나이에 맞는 생물학적 권태인지, 몸의 나태함인지, 정신과 마음의 고갈인지, 꿈을 꾸지 않는 자의 무관심이나 무의미한 일상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살아야 하고, 읽어야 한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땅은 비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살아 낼 것이다.

  • 귀신들의 땅 : 천쓰홍 장편소설
    저자
    천쓰홍 지음 ; 김태성 옮김
    출판사
    민음사
    발행연도
    2024
    작성자
    김**
    작성일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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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민음사

    구체적인 삶에서는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석하고 범주화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소설을 읽고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범주화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 구체적인 인간들의 삶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 몸부림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 종으로서 해석하고 범주화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삶은 그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역동성과 부조리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임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우연히 천쓰홍의 소설 <셔터우의 세 자매>를 읽고, 다시 <귀신들의 땅>을 또 읽게 되었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지만, 천쓰홍은 기회가 되면 또 읽고 싶었다. 작가는 타이완 사람이며 1976년 생이다. 타이완 중부지방의 작은 마을인 용징 출신이다. 이 소설의 배경도 실제 용징이다. 위로 다섯 딸과 아래로 두 아들과 그의 가족 주변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용징을 귀신들의 땅이라고 하였다. 타이완은 예전부터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귀신도 매우 많은 땅이라고 한다. 인간들과 귀신들은 같이 살아가는 땅이다. 배경은 일본 제국주의 지배기에서 장제스의 기나긴 독재 시대를 거쳐 이후, 대만의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시대의 도래까지다. 타이완은 한국과 비슷한 궤적을 거친 듯 하다. 해방, 전쟁, 군사독재,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의 긴 여정을 통과한 나라다. 옮긴이는 타이완을 다중 식민지 국가라고 한다. 17세기부터 네덜란드, 대륙의 유민인 정성공 집단, 일본 제국주의, 국공 내전에서 패전하고 건너온 국민당, 국민당의 장기 집권, 미국의 간접 통치 등 다양한 세력에 의한 압제와 수탈의 식민이 이어졌다고 한다. 타이완은 빈 땅이 아니고,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귀신들과 같이 살아 온 고장이었다. 하지만 외부의 세력들에 의해 기나긴 식민화의 역사를 거쳐야 했다. 지금도 타이완은 유엔 가입도 안 되고, 타이완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드물다고 한다. 늘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적 갈등의 중심에 놓여 있기도 하는 듯하다. 간간히 들리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그 곳 정치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중국 본토와 협력할 것인지, 독립을 선택할 것인지라고 한다. 소설의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 용징은 그들 외부 세력이 없을 때부터 살아 온 전형적인 타이완의 전통을 간직한 고장인 듯 하다. 작가는 그곳을 귀신들의 땅이라 칭하여, 타이완의 토속성과 고유성을 이야기하고, 그곳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지금은 잘 들리지 않지만, 한 때 한국인의 정서를 ‘한’이라고 정의 하기도 하였다. 한국이 한의 땅이라면 타이완은 귀신들의 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싶다. 타이완을 귀신들의 땅이라고 하는 소설가는 천쓰홍 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옮김이에 의하면 타이완 작가 리앙은 타이완의 귀신들을 정치적, 사회적 산물로 규정하는 데 비해 천쓰홍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이상의 파괴와 욕망의 왜곡, 현실의 부조리성, 사회 구성에서의 메이저와 마이너의 부조화 등 다분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풍경을 배경으로 생산한다고 평하고 있다. 리앙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천쓰홍의 소설에 등장하는 귀신에 대한 평에는 공감된다.

    천씨 집안은 대대로 용징에서 지주로 부유하게 살았다.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나고 장제스의 집권이 시작하면서 토지개혁에 의해 평범한 집안으로 지위가 하락한다. 근대화는 어느 나라나 토지개혁이 반드시 수반되는 듯하다. 천씨 가문의 아들 아산은 아찬과 결혼하고 그들 사이에는 위로 다섯 명의 딸과 아래로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소설은 이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개인의 운명과 선택과 타이완의 운명과 선택, 세계적 조류에 밀려 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때론 원하는 것을 얻고 때론 바라는 것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귀신들의 땅인 용징을 떠나고 싶고, 큰 딸과 넷째만 빼고 귀신들의 땅을 떠난다. 그러나 이들은 귀신들의 땅으로 다시 모인다. 벗어나고 싶고 버리고 싶은 귀신들의 땅을 떠났다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 귀신들을 땅으로 돌아온다. 다음 날이면 다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으로 뿔뿔히 흩어지겟지만, 그들 모두 이곳을 벗어나거나 도망치고 싶지 않은 고향처럼 여길지도 모른다. 소설은 살아있는 인간들 뿐 아니라, 귀신들도 자주 등장하여 그들의 사연과 차마 살아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게 한다. 이 땅은 살아가는 인간들의 땅만이 아니라, 죽은 귀신들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누구나 아픈 기억과 상처가 있으면 이를 덮어 버리거나 묻어 버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그림자 같고, 지나간 일들은 다시 반복된다. 과거가 있는 한 귀신은 존재한다. 인간 세계 곳곳에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귀신인지도 모른다/라고 적고 있다. 귀신은 알 수 없고, 이해 할 수 없고, 형체가 없고, 경계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귀신일지도 모른다.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들이 온다>도 귀신들을 등장시켜 그들에게 말하게 한다. 이들 작가들은 왜 죽은 자를 소환할까? 윌리엄 포크너는 “과거는 죽지 않았다. 과거는 심지어 지나가지도 않았다”라고 하였고, 소설가 한강은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을 살렸다”고 하고, 천쓰홍은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귀신일지 모른다고 한다. 과거를 죽은 자들을 귀신들을, 과거와 죽은 자들과 귀신들과 우리들은 같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모든 이상한 것과 같이 살아가야 한다. 이곳은 살아있는 인간들만의 땅이 아니다.

    그동안 일상이 바빠 책을 읽지 못했다. 아주 조금씩 이 책만 읽었다. 평소에 소설에 대해 큰 관심이 없지만, 천쓰홍의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그동안 소설에 대해 흥미를 많이 잃어버린 것은 많은 소설들이 개인의 사소한 일상만을 다루거나, 개인의 심리만을 공략한다는 느낌이었으리라. 대체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극히 개인적인 그것들을 내가 왜 읽어야 하지 하는 회의였다. 이 소설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짧지만 주문을 하나 만들었다. /살아가는 일은 피곤하고 불편하고 고단하고 무의미한 반복임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살아가면서 늘 만나기 마련인 곤란한 일에 닥칠 때마다 이 주문을 세 번 정도 외우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나는 왜 행복하지 않는가 하며 자책을 하거나,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정의하여 행복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매진하지 않아도 된다. 삶은 살아 있다는 것은 피곤하고, 불편하고 영원한 반복이 아닐까. 삶을 사랑하는 나는 고통도 불편함도 또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천쓰홍은 살아있는 인간들에게도 죽은 귀신들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울지마” “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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